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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준비 코너] 윤증현 前장관, '노욕은 노추로 이어지게 마련'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8   추천 : 0  


'노욕은 노추로 이어지게 마련' - 윤증현 前장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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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은 노추로 이어지게 마련”

  

“앞으로 9년 간 지금처럼 일하고 여든에 경기도 산자락에 마련한 작은 농장으로 들어갈 겁니다. 자연으로 은퇴하는 거죠.

 

  윤증현(71)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0년 전 지은 이 세컨드 하우스에서 요즘도 일주일의 3분의 1을 보낸다고 말했다.

 

  “고산 윤선도 선생처럼 자연과 벗해 살려고 합니다. 건강에 좋고 마음을 다스리기도 좋죠. 사람은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부인은 일주일의 절반을 여기서 지낸다. 올해는 호박, 수박, 참외, 부추, 파 등이 잘됐다고 했다. 그 덕에 싱싱한 채소를 먹었다. 가뭄 탓에 스트로베리는 안 좋았다. 농장에 가면 그도 팔을 걷어붙이고 일한다. 보통 힘들지 않다. 다행히 부인은 이 일이 취미가 됐고 열정을 쏟는다.

 

  윤 전 장관은 2009년 2월부터 2년 4개월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그가 경제 사령탑에 올랐을 땐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난 뒤였다.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그는 취임 열흘 만에 그 해 성장률 전망치를 -3%로 수정, 발표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7% 성장을 약속한 747 공약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정부가 희망을 줘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논란 끝에 그가 물러서 –2%로 조정됐다.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로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청와대와 협의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 정부가 제대로 일하고 국민의 협조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정직하게 입장을 밝혀 모두 허리띠를 졸라맬 때입니다. 마이너스로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했지만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해 한국 경제는 0.3% 성장했다. 이듬해엔 6.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 언론이 한국 경제가 ‘교과서적 성장’을 했다고 격찬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여전히 활동적으로 일한다. 개인적인 관심사도 한국 경제였다. 그에게 은퇴 세대에 대한 재무적 조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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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엔 안전성과 수익성 조화시켜야

 

 그는 애서가이다. 서울고 2학년 시절 1000페이지가 넘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느라 학교를 빼먹기도 했다. 저녁에 읽기 시작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이튿날 종일 읽었다. 담임교사가 무단결석한 그가 걱정 돼 저녁 때 하숙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이 그 시절 그가 빠져든 소설들이다.

 

 당시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나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 소설가가 ‘가지 않은 길’이 된 건 대학 입시 때 맛본 좌절 때문이었다. 1965년 서울대 작문시험에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이 지문으로 나왔다. 동이와 허생원 등이 떠난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리길을 묘사하라는 게 문제였다. 전문을 외우다시피한 소설이라 용기백배했지만 왠지 글이 잘 안 써졌다. “소금을 뿌린 듯이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숨이 막힐 듯했다”고 이효석이 묘사한 그 길을 헤매다 그는 절망했다.

 

“나중에 보니 점수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설가가 될 자질은 없었어요.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쓰는 추호식 극작가의 아들이 고교 동기였는데 그 친구는 그 시절에도 문체가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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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토지>는 한국어가 글로벌한 언어라면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을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영화광인 그는 잉글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가 공연한 영화 ‘카사블랑카’를 열 번도 더 봤다고 말했다. 당시 영화 대사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OK목장의 결투’는 다섯 번 봤다. 고교 때 프라자호텔 뒤 옛 경남극장에 사복 차림으로 영화 보러 갔다가 합동단속반에 걸려 두 번이나 정학 당할 뻔하기도 했다. 영화 잡지를 스크랩하다 걸려 선생님에게 스크랩북을 빼앗긴 일도 있다. 애석한 마음에 교무실로 찾아가자 스크랩북을 돌려보던 다른 선생님이 돌려줬다. 서울 법대에 진학하는 바람에 영화감독의 꿈도 접었다.

 

그는 인생 2막 앞에 선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로 ‘봄바람(A walk in the Spring Rain)’을 추천했다. 1970년 작으로 잉그리드 버그만과 안소니 퀸이 로맨스 그레이의 불륜을 연기했다. 그는 안소니 퀸이 잉글리드 버그만을 안고 있는 이 영화의 스틸 사진을 간직했는데 누군가 가져갔다며 안타까워 했다.

 

 지난해 한 아주머니가, 그가 소장으로 있는 ‘尹경제연구소’로 그를 찾아왔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남편이 그의 마산중학교 동기동창이라고 했다. 60여 년 전 같이 졸업한 중학교 동기였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이 ‘가장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친구인 그를 죽기 전에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궁리 끝에 그는 스웨덴 태생의 저명한 심령학자 스베덴보리가 쓴 책 『위대한 선물』을 들고 尹경제연구소에서 멀지 않은 여의도 성모병원을 찾았다. 일찍이 과학자로서 아이작 뉴턴과 같은 반열에 올랐던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영계를 오가며 체험한 지옥과 천국을 이 책에 기술했다.

 

 그는 병상의 친구에게 “날 찾아줘 고맙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사후에 저 세상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대. 저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지도 몰라.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

 

일주일여 뒤 부인에게서 남편이 평온을 되찾고 편안히 지낸다는 연락이 왔다.

 

“그 책을 한 페이지씩 교대로 읽었습니다. 남편이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제가 다음 한 페이지를 읽어줬죠. 저도 그 책 덕에 남편이 새로운 인생 길을 가게 될 거란 확신이 생겼어요.”

 

한 달 후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 일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잘한 일로 이것을 꼽습니다. 그 책을 저에게 준 친구도 고마웠고요.”

 

그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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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에 경제적·심리적 부담 주지 말라

 

그는 인생 2막 무대에선 분수를 알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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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도 이른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자식이든 후배든 주위사람들에게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추억 속에 살면서 옛날 얘기나 하면 절대 환영 못 받아요. 부단히 책을 읽고 자료를 소화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선배들을 만나면 돈을 내라고 조크를 한다고 말했다.

 

“선배. 오뉴월 하루해가 얼마나 무서운 줄 몰라요? 나같이 젊은 후배 만나 새로운 지식도 얻고 젊은 기도 받으니 돈 내세요, 밥을 사든지, 그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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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래에셋은퇴연구소